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문단 편집) == 명예로운 경력 == 이토록 당대 최고 명문출신인 그는 최초의 경력인 대대장을 [[술라]]의 군대에서 시작하였다. 이때 [[동맹시 전쟁]]을 치루는 상황에서 그는 [[캄파니아]] 지방에서 주로 활약하였으며(기원전 90~89) 이때 군인으로써 뛰어난 재능과 지적 능력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된다.[* 루쿨루스는 만 28세에 명예로운 경력의 가장 말석인 대대장을 최초로 시작하였는데 이는 당대의 기준으로는 늦은 편에 속하였다. 20대 초중반에 이미 임페리움을 소유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폼페이우스는 예외적인 경우로 쳐도 대부분 20대 초반의 나이에 명예로운 경력을 밟고 20대 후반에 재무관을 역임하는게 일반적이었다. 루쿨루스는 비슷한 나이의 동년배들이 재무관이었을때 대대장이 된 것이었다.] 기원전 88년, 그는 재무관으로 선출되었는데 그 해에 술라가 집정관이 된다. 그해 술라는 로마 진군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을 감행하는데, 이때 지휘관 중 한 명 빼곤 모두 불복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 동안 루쿨루스와 술라의 관계를 본다면 이 지휘관이 바로 루쿨루스가 아닌가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 뒤 술라가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수행키로 결정하자 루쿨루스는 재무관의 신분을 뛰어넘는 권한을 술라로부터 받는다. 아마도 루쿨루스만이 로마 진군 때 술라를 따랐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술라는 갓 30세에 접어들고 군사경력이 2년 정도에 지나지 않은 루쿨루스에게 자신의 군대를 맡겨 그리스로 우선 보냈다. 그 뒤 그리스에 도착한 술라는 아테네를 포위공격하여 승리한 뒤 해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루쿨루스에게 해군편성이라는 중임을 맡긴다. 루쿨루스는 로마의 동맹국들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전함을 받아내었고 크레타 섬에서는 많은 도시들을 방문해 로마의 편에 서도록 설득하였다. 그가 방문한 [[키레네]]는 7년에 걸친 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루쿨루스는 로마를 대표하여 이들을 중재하기도 하였다.[* 고작 재무관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직 집정관이자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총사령관인 술라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로마 공화정 시절 임페리움의 권한은 어마어마해서 전쟁 지휘권뿐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외교권과 점령지의 행정개편, 그리고 강화조약의 내용을 결정하는 일을 총사령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즉 임페리움의 소유는 사실상 왕의 권한을 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뒤 3년간의 노력끝에 마침내 해군을 편성하는데 성공한 그는 기원전 86년 [[폰투스]]의 해군과 결전을 벌여 승리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술라군이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건너는 것을 도왔다. 곧 미트리다테스와 술라의 평화협정이 맺어지자 루쿨루스는 그대로 아시아에 남아 술라가 그 지역에 물린 막대한 벌금을 거두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루쿨루스는 그 벌금을 될 수 있으면 적게 거두려고 애썼다고 한다.[* 이건 아시아 지역에 대한 배려였다. 일시에 막대한 금액을 치를 여력이 없던 아시아 지역은 로마의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돈을 빌려 벌금을 치르고 빚을 갚아야 했는데 나중에 가면 이자가 붙다보니 이 빚이 벌금보다도 큰 액수가 되었다.] 사치스러운 생활로 유명한 루쿨루스였지만, 속주를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그는 징세청부업자들을 엄하게 단속하고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다보니 당시 로마 경제계를 장악하고 정치권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기사계급들에게 루쿨루스는 큰 원성을 샀고, 이는 그가 불명예스럽게 실각하는 원인이 된다. 술라가 권력을 잡자 루쿨루스는 귀국해 기원전 79년에 안찰관, 이듬해인 기원전 78년엔 법무관으로 선출되어 쿠르수스 호노룸의 단계를 착착 밟아나갔다. 일찍부터 술라의 최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관의 나이에 군 사령관을 맡으며 튀는 모습을 보였던 폼페이우스와는 달리 그는 로마의 법제도를 존중했는지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관직만을 밟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법무관]]이었을 때 아프리카 총독을 지냈는데 그 지역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하였다고 한다. 루쿨루스가 법무관에 당선된 뒤 집정관에 선출되는 기간인 5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이때 로마는 술라가 죽고 집정관 레피두스가 반란을 일으키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루쿨루스는 아프리카 통치에 전념했던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위의 상황을 폼페이우스가 맡아서 안정시킨다. 루쿨루스는 기원전 75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 결혼하였는데, 이때 술라가 자신의 후사를 루쿨루스에게 부탁했으므로 술라의 일가를 보호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